사소하고 남들 눈에는 보잘것 없어 보여도, 어떤 사람에겐 소중하고 추억이 되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곳 밭이 내겐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귀농하겠다고 집사람을 설득하느라 순차적으로 일을 벌이다 보니, 작은 평수의 밭(300평정도)이지만 우선은 이곳에서 농사를 시작하기로 하고 봄부터 낙엽을 아파트에서 실어 날라서 덮고 고추, 감자, 고구마, 토마토를 심었었습니다.
친환경농사를 짓기에 풀과 함께 작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주위에선 농사를 비닐 안쓰고, 비료 안 뿌리고, 농약없이는 절대로 안된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래도, 아무말없이 묵묵히 제 방식대로 농사를 지었지요. 그러니 요즘 같이 비가 계속 내리는 관계로 풀을 베어도 곧 자라버리더군요. 그런 과정중에 아래사진처럼 김장채소를 심으려 토마토를 뽑고 풀을 베어덮고 소똥을(밭이 조금 척박한 관계로) 그것도 어렵게 항생제를 쓰지않는 목장에서 실어온 소똥을 뿌렸답니다.
(낙엽피복위에 풀로 피복, 그리고 소똥입니다.)
그런데, 며칠전에 밭주인이 들렸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전화를 해서, 밭관리를 엉망으로 한다고 질타를 합니다. 도대체 이렇게 엉망으로 농사를 짓는 경우를 처음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접 농사를 지을테니 밭을 내놓으라 합니다. 주인이 내놓으라 하니 할 수 없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했지요. 그리고, 오늘 며칠째 내린 비에 어찌 되었나하여 밭에 가 보았습니다. 그 순간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밭옆에 사는 아저씨(밭을 판 사람)께서 경운기로 밭을 갈고 있는 것 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물으니, "몰랐어요? 밭주인이 지금부터 나보고 농사 지어 먹으라 합니다." 하네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더군요.
이미, 제초제를 뿌렸구요. 밭은 깊게 경운기로 갈았구요. 제가 피복했던 것들은 모두 땅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린 뒤였습니다. 잘 삭은 낙엽과 두텁게 덮었던 풀들은 이미 흔적도 없어져 버린 뒤였습니다.
(제초제를 뿌려 풀을 아예...,)
(직파한 고추와 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작물이 심어진 곳에도 제초제를...ㅠㅠ)
(질은 땅인데 경운기로..,)
(고추밭입니다. 비닐 쓰지않고 낙엽피복하고 풀은 베어서 두둑에...)
(10일만에 풀을 베었습니다.)
(풀이 많기는 하지만 잘 크고 있는 고추밭입니다.)
(정말 예쁜 고추밭..., 완전 친환경입니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아침이었습니다. 밭에 도착한 시간이 6시반..., 아저씨는 일찍 밭을 갈고 저와 마주치지 않으려 했지만, 제가 너무 일찍 밭에 나온 것입니다. 어찌나 당황하시는 눈치던지요...,
사람일이 그렇잖아요. 뻔히 농사짓는 제가 있는데, 주인이 밭을 부쳐 먹으라 했다고 해도 제게 한마디 상의는 해야하는게 사람의 도리가 아닐련지요?
아무말없이 때는 이때다 싶게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아저씨의 그 당당한 태도는 참으로 난감합니다. 나이드신 영감님과 멱살잡이를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이제껏 밭을 살리기 위하여, 위해(爲害)되는 것들은 피하여 동식물이 상생하는 그런 생명의 밭으로 바꾸려 노력했던 일들이 제초제 한방에 모두 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내내 토가 나올것 같아서 밭에서 일하는 동안 아무말도 건네지 않고 묵묵히 일만 했습니다. 아내가 아저씨에게 간식도 건네고 서로 마음 상하지 않으려 얘길 나누는 것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이렇게 참으로 슬픈 하루였습니다. 밭을 잃어서가 아니라, 사람의 경우를 상실한 아저씨의 행동에 서운했고, 무엇보다도 생명을 잃어버린 벌건 속살을 드러낸 쟁기질 당한 흙을 보면서 너무나 슬펐습니다. 사람이 먹기 위하여 농사를 짓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을 살리는 농사여야 합니다. 그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ㅡ, 오늘 경험한 처참한 광경은 앞으로 두고두고 귀감이 될 것 입니다. 철원의 밭에서 콩밭에 제 키보다 더 자란 풀을 뽑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아저씨의 행동을 이해하기로 하였습니다. 사람의 각자 생각은 다르기에...,
저라도 생명을 살리는 농사에 더욱 철저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 하루였습니다.
이처럼 풀어 놓으니 가슴에 있던 멍울이 풀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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